
효곡서원
庆尚北道 尚州市 공성면 용신2길 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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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곡书院은 김충(1513~1572), 송량(1534~1618), 고인계(1594~1647), 김광두(1562~1608)를 제향 한 书院이다. 김충은 1515년(明宗 6)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기주관, 호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송량은 성운(1497~1579)의 문인으로 헌릉참봉, 한성참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지들과 함께 오현원을 창건하고 학규를 만들어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다. 고인계는 북인에 가담하기를 거절하였다가 영서도찰방으로 좌천된 이후 사직하였다. 仁祖반정 후 성균관전적, 형조좌랑, 예안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김광두는 壬辰倭乱(日本侵朝战争,1592-1598年) 때 정경세, 이전, 이준 등과 함께 창의 하여 왜군을 격퇴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사설 의료원인 존애원을 설립하는 데 동참하였다. 효곡书院은 1685년(肃宗 11) 송량을 배향한 세덕사로 출발하였다. 1724년(경종 4) 세덕사의 지세가 좁고 불편하여 공성면 각회산 아래로 이건 하였다. 1735년(英祖 11) 김충과 고인계를 추배 하여 书院으로 승원 하였다. 1780년(正祖 4) 각회산 아래에 있던 书院을 절동으로 이건 하였고, 1786년(正祖 10) 김광두를 추배 하였다. 1870년(高宗 7) 효곡书院은 书院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고, 1902년 유림의 공의로 단소를 설치하여 단향을 봉행하였다. 이후 1931년 효곡书院을 복원하자는 상주 유림의 공론이 취합되어 본래 자리에서 서북쪽로 약간 옮겨서 강당을 건립하였다. 1968년 비로소 묘우를 중건하여 단향을 폐지하고 복원 고유제를 봉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