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35년. 그러나 3·1운동과 임시정부, 무장 독립투쟁으로 끝내 광복을 이뤄낸 시대.
- 1910년
국권 피탈·무단통치
조선총독부가 헌병경찰을 앞세운 무단통치를 시작함.
- 1910년
토지조사사업 시작
조선총독부가 근대적 소유권 확립을 명분으로 토지조사사업을 벌여, 신고하지 못한 토지를 빼앗고 식민지 수탈의 기반을 마련했다.
- 1911년
105인 사건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를 조작해 신민회 인사 등 민족 지도자들을 대거 검거·투옥했다. 이 사건으로 신민회가 사실상 해체되었다.
관련 인물: 안창호, 이회영
- 1919년
3·1운동·임시정부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고,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됨.
관련 인물: 유관순, 안창호
-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됨. 3·1운동의 결실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됨.
관련 인물: 이승만, 김구
- 1919년
의열단 결성
김원봉이 만주 길림에서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요인 암살과 식민 통치 기관 파괴를 목표로 한 무장 의열 투쟁을 전개했다.
관련 인물: 김원봉
- 1920년
봉오동·청산리대첩
홍범도·김좌진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크게 무찌름.
관련 인물: 홍범도, 김좌진
- 1920년
산미증식계획
일제가 일본 본토의 식량 부족을 메우기 위해 조선의 쌀 생산을 늘려 대량 반출함으로써 농민의 식량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다.
- 1923년
물산장려운동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시작하여 국산품 애용으로 민족 경제의 자립을 꾀한 실력양성운동이다.
관련 인물: 조만식
- 1923년
형평운동
백정에 대한 신분 차별 철폐를 외치며 진주에서 조선형평사가 조직되었다. 인간 평등을 내건 대표적 사회운동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1926년
6·10 만세운동
순종의 인산일을 기해 학생과 사회주의 계열이 서울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으며, 이후 민족 협동 전선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관련 인물: 순종
- 1927년
신간회 결성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좌우 합작으로 결성한 민족 유일당 운동의 대표 단체이다.
관련 인물: 신채호
-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광주에서 한일 학생 간 충돌을 계기로 시작된 항일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학생 항일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 1932년
이봉창·윤봉길 의거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윤봉길이 일제 요인을 겨냥한 의거를 단행함.
관련 인물: 윤봉길, 이봉창
- 1938년
조선의용대 창설
김원봉이 중국 우한에서 조선의용대를 조직했다.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로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끌었다.
관련 인물: 김원봉
- 1939년
민족말살정책과 창씨개명
일제가 황국신민화를 내세워 우리말 사용 금지, 신사 참배,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을 지우려 한 식민 통치의 절정이었다.
-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임시정부가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을 만들어 대일 항전을 준비함.
관련 인물: 김구
-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한글을 연구·보급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일제가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검거·투옥한 사건으로, 민족 말살 정책의 단면을 보여 준다.
관련 인물: 한용운
- 1943년
카이로 선언
미·영·중 정상이 카이로에서 회담하며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 1945년
광복 (8·15)
일본의 항복으로 35년 만에 나라를 되찾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