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약 1750제도
영조의 탕평·균역법
Yeongjo's reforms
영조가 붕당의 다툼을 누르는 탕평책과 군포 부담을 줄인 균역법을 시행함.
주요 전개
- 붕당 폐해붕당 갈등과 탕평의 필요성
숙종 대부터 심화된 환국 정치로 붕당 간 갈등이 극심해져 영조가 탕평을 국정 기조로 삼았다.
- 1742년경탕평비 건립
영조가 탕평의 뜻을 새긴 탕평비를 성균관에 세워 붕당을 초월한 인재 등용 의지를 천명했다.
- 1750년균역법 시행
농민이 부담하던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균역법을 시행해 백성의 세 부담을 완화했다.
- 재원 보완결작·선무군관포로 보완
줄어든 군포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토지에 결작을 부과하고 선무군관포 등 보완 재원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