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
낙동강 유역 철의 왕국. 여러 가야가 연맹을 이뤘으나 끝내 신라에 병합됨.
- 42년
금관가야 건국
김수로왕이 김해에서 금관가야를 세움(난생 신화). 풍부한 철로 번성.
관련 인물: 김수로왕
- 48년
허황옥 김수로왕과 혼인
바다 건너온 허황옥이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김해 일대에 허왕후릉과 관련 전승이 남아 있다.
관련 인물: 허황옥, 김수로왕
- 2세기경
변한·가야의 철 생산과 교역
낙동강 하류 가야 소국들이 풍부한 철을 생산해 덩이쇠를 화폐처럼 쓰고 낙랑·왜와 교역했다. 김해 양동리·대성동 유적에서 철기 부장품이 다수 출토되었다.
- 3세기경
아라가야의 성장
함안 일대를 중심으로 아라가야가 유력 소국으로 성장했다. 말이산 고분군과 불꽃무늬 토기가 아라가야 문화를 대표한다.
- 209년
포상팔국의 난
남해안 여덟 소국이 연합해 금관가야(가락국)를 공격하자 신라가 가야를 도왔다. 가야 소국들 사이의 갈등과 신라의 개입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 400년
광개토대왕의 남정과 금관가야 쇠퇴
신라를 침입한 왜를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낙동강 하류까지 추격하면서 금관가야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가야의 중심이 대가야로 옮겨 갔다.
관련 인물: 광개토대왕
- 5세기 중엽
대가야의 부상
고령을 도읍으로 한 대가야가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다. 지산동 고분군의 금동관과 갑옷·마구가 대가야의 위세를 보여 준다.
관련 인물: 이진아시왕
- 532년
금관가야 병합
금관가야가 신라에 병합됨. 왕족은 신라 귀족이 됨(김유신 가문).
- 552년경
우륵의 가야금 12곡
가실왕의 명으로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열두 곡을 지었으며, 대가야가 어지러워지자 신라로 망명해 충주에서 음악을 전했다. 가야 음악이 신라로 이어진 계기다.
관련 인물: 우륵, 가실왕
- 562년
대가야 멸망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 진흥왕에게 멸망하며 가야가 완전히 사라짐.
관련 인물: 진흥왕